[렛츠리뷰] 시사IN 51호 담청 리뷰~

이명박 정부의 초반 러쉬에 치열하게 몸부림치고자 노력하는 매체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조.중.동 이란 거대 오프라인 언론 앞에서
일개 찌라시나 광고수입으로 근근해야 하는 시사/보도 매거진들의 한계는 굳이 예상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구도 안에서 질좋은 기사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이기적 요구와
다수란 이름의 민주주의적 병폐에 공공성을 지키고자 지랄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처해있다.
하지만
민족과 제4부라 불리는 언론이란 정체성과 사명감 앞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희생이란 이름으로 등에지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난 적어도 시사IN식구들은 그런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다.
개인적 기준의 평가기에 너무 거부감을 느끼시지 않으셨으면 한다..

우선
그들이 지향하는 4대 미션에 대한 개인적 판단을 이야기하고 싶다.


1. 전 지구적인 시각으로, 세계와 대한민국의 문제를 바라봅니다.

5점 척도 기준으로 4.5점 정도 주고 싶다.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케냐의 정치적 현실을 향한 청년들의 의식계몽등은 균형접인 접근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양적으로 베이징 올림픽과 미국 대통령 대선에 치우친 접근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 판단.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원전 관련 보도에 대한 전세계적인 사례를 소개하며 원전과 그린경영에 대한 언급은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시야 확보와 사고의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2. 승자독식 경제가 아닌 더불어 사는 경제, 나눔의 경제를 지향합니다.

하하..뭐..이건 시사저널에서 어떠한 이유로 나왔는가에 대한 그들의 정체성을 보면
뭐..적당한 점수를 주어도 좋을 듯 하다.
솔직히 시사IN이란 매거진을 첨 접하는 내가 뭐라뭐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잡지한번 본 것으로 이들이 행하는 나눔의 경제는 인지하기 어렵다.
브랜드 가치가 여러방면에서 미약한 것 같고,
이들이 실행하고 있는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한 가시적인 CSR활동도 솔직히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미약한 자본구조적 관점에서 그들이 공공성을 우선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이 미션은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3. 다양성,평화,공존을 추구합니다.

다양한 분야에 이슈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평화,공존은 솔직히 지금의 단계에서 평가하기 뭐하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언론이든 100%의 공공성을 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회 모든 이들에게 보편타당한 이념의 문제도 있겠지만,
특별히 요즘같은 포스터모더니즘 사회에서
어떠한 언론이든 자기들만의 색깔과 주장 아닌 주장이 기입되기 마련이다.
사회에 대한 정보전달면에서야 다양성이 주요 포커스가 될 수 있겠지만,
정책에 대한 논평은 어느 한편으로 다소 기울이기 마련인 듯..

뭐 갠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결정과 방향성들을 결코 좋아라 하지 않지만,
객관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주장들을 보호하는 근거를 소개한 의견들도 무게있게 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뭐 무게있게 실릴만한 의견이 없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판단은 언론이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시민들이 하도록 언론은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적으로 균형을 맞춘다고 해서 공공성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시사IN은 나름 비판의 논평에 있어서도, 균형잡힌 접근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울인 듯 하다. 어느쪽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리라..ㅋ

4. 독자와 함께 가치 있는 삶을 만들어 갑니다.

이건 뭐 대충 읽어봐돠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다.
80페이지 밖에 안되는 협소한 장소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나름 너그럽게 봐주려는 시도를 한다면 말이다...


뭐 별로 기대하지 않은 맘으로 처음으로 신청한 렛츠리뷰의 담청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방통연합이랴, MBC,KBS1 민영화라, 방송신문겸영 허용이라..
뭐 시끌시끌한 한국 언론 시장에
빛같은 존재들로 우리들의 시야를 균형있게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시간이 더 있으면 기사기사 하나하나 소개하며 리뷰를 쓰고 싶지만..
힘들다..나도 물리적인 시간이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ㅡㅡ
어쨌든 공짜로 얻은 이의 채무는 이로써 값고자 한다.

그럼..다음 기회에..^^


렛츠리뷰

by 칼라꾼 | 2008/09/09 03:06 | 트랙백 | 덧글(0)

남산타워 사랑의 자물쇠 감상..(사랑의 표식, 자연은 아프구나)

3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친구
굳이 이태원까지 직접 방문해 주셔서
가까운 남산으로 고고싱했다.
결혼했어요의 알렉스 덕에
이젠 빠굼한 자리를 찾아보기 힘든 남산타워 전망대 철조망 정경이었다.

수 많은 연인들의 사랑의 행위이자 상징이지만
지나치게 많은 자물쇠들은 그날 따라 그리 예뻐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고,
또 하나의 상징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이룩한
문화마케팅을 펼치는 이 행위를 보고 
옳고 그름을 논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나도 꼭 여자친구와 하고 싶은 wishlist중에 하나였지만
이젠 왠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진다.

 
그 누구도 여의치 않는 오히려 미적 시너지 효과만을 일으키는
저 금지판은 목적을 상실한지 오래다.
사랑의 요식행위 앞에 무너진 윤리의식!
하긴 다르게보면
남산타워에 관광객들을 유인하기 위한 스토리 마케팅을 제작한
담당 직원들의 이율배반적 행위를 먼저 비판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거룩한 사랑의 의미 앞에서
자연은 까지껏 우선순위에 밀릴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뭔가 다른 이에게 상처 혹은 피해를 주면서
의미를 부여한 사랑의 표식들이 그리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은 것은
나만의 기준인가?.

언젠가 해외에서 여행을 할 때마다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며 감상할 때마다
한국연인들의 국제적인 애정표식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남의나라 국립공원 곳곳에 남긴
철수♡영희 Forever
그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글의 위대함을 그런식으로 표현된다는 것이
참.참.참. 거시기했다

열쇠를 던지는 것이 자연을 훼손하는 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공공에게 금지사항으로 올릴만한 사안이 되었다면
..음..
좀 거시기하긴 한 것 같다.

사랑도 좋지만
사랑이 더 순수해지기 위해선
다른 무언가/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잠시 생각한 하루였다.

뭐 예외도 많이 있겠지만..~~

by 칼라꾼 | 2008/09/06 03:31 | 수다꾼 | 트랙백 | 덧글(2)

개독교의 독단성에 대한 자성..개독교인 누군가는 해야하지 않을까?

기독교는 항상 종교적 이슈에 중심에 서 있다.
어느 종교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기독교는 말이 많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성경의 말씀이 진리라면 말이다..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독단적인 잣대는 하루이틀 애기도 아니다.
장경동 목사의 발언이 아주 이슈가 되고 있는데..
뭐 장경동 목사뿐이랴...새삼스럽게 이슈화 되는 것도 조금은 우습게 느껴진다. 
교계의 모든 리더들이 이러한 독단적인 잣대를 들이되며 강조한다.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며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기에
하나님만을 믿는 것이 유일한 생명의 길이라 믿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순간, 기독교의 본질을 져버리는 것이라 단호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불가분의 논리적 대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며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 같다.

나 또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그 개독교의 이름에 속한자로서
조금은 다르게 생각을 해 본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믿고 고백하는 나지만,
난 기독교의 이기적이며 독단적인 모습들을 거룩함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 독단적일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절대성은 이렇게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즉 성경의 본질은 사랑이다.
이 사랑이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이질적인 문제일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또 다른 본질인 절대성은  
결국 모든 종교는 하나의 이치를 말하는 상대적 이치와는 공존할 수 없는 패러다임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겸손함이란 것도 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는 없는 본질적 한계가 있다하더라도, 적어도 타종교를 까내리지 않은 겸손함 말이다.
기독교의 교리상 타종교는 우상일 수 밖에 없지만, 그 우상을 까내리며 폄하하는 것이 기독교의 승리는 아니다.
승리는 그런 식으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쟁취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행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은 누군가를 까내림으로써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섬김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믿는다.

사람들은 은연속에 종교인에 대한 거룩함을 기대하며 원한다.
구별되지 않은 그저 그런 거룩함이라면 굳이 종교인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누구나 하는 비판과 누구나 하는 험담과 누구나 즐기는 상대방에 대한 폄하라면
사람들이 굳이 왜 신앙인이 되려고 자처하겠나? 그것도 기독교를 선택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성령이 사람의 맘을 감동케하셔 움직이시는 많은 부분 중에 하나가 신앙인들의 다른 무언가 때문이다.
이기적이며 세속적일 수 밖에 없는 자신과는 다른 무엇인가, 즉 정결케 되기를 원하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의 골을 내면서, 누군가가 하나님을 믿기를 원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지 않나?
하나님을 왜 전하려고 하는가? 왜 굳이 하나님만을 전하려고 하는가? 왜 굳이 예수그리스도여야 하는가?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그런가?
교회에서 그렇게 시켜서 줏대없이 그렇게 행동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국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 믿어서 그런가?

이 질문들에 확신과 믿음이 있는 개독교인이라면,
적어도 주님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진실로 고백하는 개독교인이라면,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셨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을 전파했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우상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지, 그들을 비방하기에 힘쓰라고 하지 않으셨다.
바울이 그리스와 수많은 지역을 돌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타종교를 비방하며 폄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예수님의 구원자되심을 논리적으로 전파했을 뿐이다.

그리고 타종교만을 우상으로 여기는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다.
내 주변에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모든 것이 우상이라는 이해가 오히려 성경적이지 않을까?
당신의 취미, 당신의 욕심, 심지어 당신의 여친, 남친 모두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셨다고 믿는다.
뭐 주신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에 그 방법도 다양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예수님도 바울도 그 시대에 맞게 창의적이며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다고 믿는다.

그러면 이 시대에 적합한 방법은 무엇일까?
지혜롭게 생각해보며,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지향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더 테레사의 섬김을 기억하는가?
그녀는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폄하하며 예수를 전파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조용히 섬길 뿐이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입으로 전도하기 보다는 행위로 전도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으로 사람들이 변하였고, 그녀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자연스럽게..그녀는 성령의 통로가 되었던 것이라 믿는다.

그에 비해 지금의 기독교는 어떠한가?
참 비기형적인 모습들이 많다.
우리 삶의 우상을 보지 못하고,
선교를 명목으로 해외에 가서 우리들이 행한 놀라운 만행들은 그저 놀랍다. 이럴수도 있구나 할 정도로...
다른 나라의 귀한 문화재를 우상이란 이름으로 파손하는 행위는 참 엽기적인 방법이다. 다양해도 이렇게 다양할 수 없다.
남의 나라 지폐에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적을 수 있는 그 강력한 담대함은..난 하나님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참 가지가지 기독교를 욕먹게 하는 방법에는 정통이 나 있는 것 같다.
뭐 뭔데서 찾을 것도 없지 않을까?
단군상을 보며 우상이라고 치열하게 주장하는 것도 참 소모적이며 어릭석은 방법이라 생각지 않나?
선택과 집중을 해도 이런데 집중하는 것 보면 참..그 놈의 지혜란 것도 이렇게 쓰일 수 있구나 싶다.
그런데 집중할 것 같으면, 내 컴퓨터에 안에 고이 모셔둔 뽀르노 우상에 집중하여 자유해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참 대의적인 방법으로 가지가지 하는 모양이란..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추태다.
뭐 한기총에서 하는 짓거리들이 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다.
나도 판단의 잣대로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동일한 죄인이겠지만,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말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우리가 핍박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런데 난 기독교가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정말로 건강한 것이라 생각한다.
기독교는 핍박가운데 성장했고, 핍박을 통해서 더 세상의 귀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욕을 얻어 쳐 먹고 있다.
핍박과 욕은 엄연히 다르다. 정말로 다르다.
핍박은 우리가 어떤 잘못된 행위에서가 아니다.
하지만 욕은 우리가 잘못해서 받는 것이다.

왜왜왜...우리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핍박의 시간이라 생각하는가?

난 정말 하나님이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지금의 수많은 한국교회를 보시면서 난 너희들 모른다 하실까 겁이난다.
뭐 굳이 한국교회라 말할 것 있냐?
내 삶을 보시며 그렇게 말하실 것 같아 두렵다.

이 시대에 믿음의 사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자성과 고찰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런식의 전도도 웃기지 않나?
기독교인들을 보며 예수님을, 기독교 전부를 판단하시진 말라고..
믿는 사람들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모두 죄인이기에 여러분이 기대하시는 그런 모습이 아닐 수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시기에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보기보다는 그분의 사랑만 보며 믿음 생활을 해 보시지 않겠냐고...

난 이런 전도의 고백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신 분들은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된다.
예수의 사랑을 고백하는 기독교인에게 사랑의 상처를 받아서 말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크리스천을 통해서 전달되지 않으면 도대체 크리스천들은 누구를 믿고 있단 말인가?

간디의 말이 또 다시 기억난다.
예수는 좋지만, 크리스천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정말 이 말에 공감해야 이 현실이 오늘도 씁쓸하구나..


by 칼라꾼 | 2008/08/27 03:54 | 수다꾼 | 트랙백 | 덧글(1)

진정 살아있는 전설, 이승엽! 더 이상 깎아내리지 마라!!

이승엽이란 이름 석자가 우리에게 주는 브랜드 이미지는 어떠한가?
각 사람에게 차이가 있겠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그가 보여준 끈기와 신념의 모습은 역시 이승엽이다란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그를 진정 살아있는 전설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참 오랜시간 동안 그의 팬으로서 안타깝게 지켜보았던 것은 그의 부진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그의 끊임없는 반사적 평가였다.
왜그리 사람들은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 좋아하고, 그 영웅을 깎아내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승엽이 일본 진출 후 시범경기에서 타율이 0.050이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오푼이'로 추대했다.
인터넷 검색란에는 쉽사리 이승엽의 '굴욕'이란 검색어가 그를 조소하기에 급급했고
그가 한국에서 이룬 업적들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아니했다.
혹자는 그가 국내용이라며,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역량이 아니었음을 자신의 의견이 옳았다는 듯이 마냥 즐거워할 뿐이었다.
이승엽 선수가 부진한 성적을 보일 때 마다 사람들은 그가 한계에 이른마냥 끝났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의 부상 투혼에도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어리석다고 말하기에 열정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그가 좋은 성적을 보일 때는 그의 성과에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당연한 듯이 여겼다.
얼마나 이기적인 잣대인가??
물론 모든 언론이 다 그랬겠냐만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기 힘들정도로 그랬다.


적어도 선동렬이 영웅이었던 그 때는 달랐다.
그가 일본으로 가서도 마지막 부진을 보였을 때, 우리는 그를 끝까지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했었다.
물론 그 당시는 인터넷이란 거대매체가 아니라
일방적 스포츠 영웅이 기존 보수단체에 의해 비판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선동렬 감독이 비하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나라 최고의 투수라는 호칭을 얻을만큼 그는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어느 정도의 전성기를 유지한 채, 은퇴한 그가 부러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난 단지 이승엽 선수가 일본적에서 홈런을 치고 흘렸던
그 눈물이 정말로 가슴이 에어왔던 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만약 그가 홈런을 치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홈런을 치지 않고, 또 삼진 아웃을 당했더라면
우리는 그에 대해 무엇이라 평가했을까?

물론 그의 부진한 성적을 비판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당연한 평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한국야구에 남긴 절대적 기록들,
일본 야구에서 그가 보인 기록적 성적들,
WBC에서 이룬 모든 성적까지 사장될 정도로
그를 폄하하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앞으로 또 한번 그에게 부진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 때 우리는 이승엽 선수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의 부진 속에서도 열정과 열심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국민적 응원을 보탬에 우리의 열정을 쏟아내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적 있는가?

언제가 양준혁 선수가 무릎팍 도사에 출현해 이승엽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한다.
승엽이가 우리나라 선수들의 사고관을 바꿨다고..
자기관리의 중요성, 그리고 끊임없는 열심과 열정
승엽이는 후배지만, 자신의 스승이나 마찬가지라고...
뭐 양준혁 선수만이랴...
베이징 올림픽 때 김현수 선수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아마..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칠 수 있냐고..?
새깜한 후배에게 하늘같은 존경스러운 선배가 할 수 있는 겸손의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봐야하겠는가?

우리는 그의 한결같은 겸손과 열심에 박수를 내밀었다는 것을 잊지말자.

난 그의 수많은 인터뷰 속에서 그의 겸손함과 국민적 애정을 느낀다.
그는 항상 국민이 자신에게 보낸 애정에 대해 보답하고자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리고 자신의 결과에 대해 항상 겸손해 한다.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함에 미안해했다.
그리고 한국야구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난 그에게 살아있는 전설이란 호칭을 부여하는 것이 감히 어려운 결정이 아니라 생각한다.
마땅한 일이라 주장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질문을 하고 싶다.
지금 또 한명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받고 사랑받는 박태환 선수가 언젠가 부진할 그 때가 된다면
우리는 그를 무엇이라 평가할까? 그를 폄하할 준비를 미리 반사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을까?

국민적 영웅은 국민이 만들고 국민이 죽인다면
진정 희생양은 그 영웅에 놀아난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다.

그들이 영웅이란 전설이란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그만큼 기쁨과 긍정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그들의 땀과 열심에 대한 타당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그들의 칭호에 대한 가치와 기한이 무색해지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by 칼라꾼 | 2008/08/26 03:24 | 트랙백 | 덧글(2)

올림픽의 패자들..그들은 또 한번 잊혀지는가?

2008 베이징 올림픽!
그 어느 때 보다 국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Web 2.0 세대의 우리들의 열정적인 Interaction이
그 어느 올림픽보다 국민적 열광을 자아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력을 찾아보기 힘들정도의 무서운 물가상승률
시민 경제의 궁핍과 불안정한 국내외 상황으로 인한
촛불의 민심이 올림픽으로 전가되지 않았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무엇인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여유를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베이징 올림픽의 태극전사들의 기대 이상의 성과들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피와 땀에 대한 건실한 결과는
마땅히 칭찬받아야 하며 우리는 그들의 열심에 갈채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메달리스트로서의 압박 속에서 더 끊임없는 노력으로 금메달을 다낸 최민호 선수
아시아의 수영 역사를 다시 쓴 박태환
아테네 올림픽 때의 실수를 전화위복으로 삼은 진종오 선수
오랜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절대강자의 자리를 지킨 우리 양궁 선수들
세계신기록으로 경쟁자 무솽솽 불참에 대한 사변을 일시에 불식시켜버린 장미란 선수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자리에서 조용히 승리를 일궈낸 사재혁 선수
개인전 탈락과 여자복식 결승의 패배를 아픔을 견디며 금메달을 진 배드민턴 남녀 복식 이용대 선수와 이효정 선수
종주국이란 압박 속에서 우승을 일궈낸 태권도 선수들
한 때 절대 불가능의 고지로 여겼던 야구의 금메달

이들 모두는 우리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을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경쟁이란 이름안에 상대적으로 잊혀져가는 이들을 돌아보는데 소홀히 한다면
우리의 국민적 열광도 경쟁이란 절대적 잣대 아래서
패자의 땀의 가치를 짓밟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다양한 종목의 태극전사들이 오랜 땀을 시험하며 국가의 기상을 높이는 자리에
대한민국의 대표로 그 자리를 나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그들은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개막식 때 우리 선수들 모두를 향해 우리가 보낸 갈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예전과는 다르게 언론도, 우리도 은메달 리스트와 동메달 리스트들의 선전에 조심히 주목하고도 있다.
그와 동시에 패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악글 또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만큼 기대와 사랑이 컷기에 그에 따른 실망감이 비뚤어지 모습으로 표현되는 양상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성숙한 한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조용히 우리의 판단의 기준과 잣대를 조명해 봐야하지 않을까?

물론 실패와 패인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국내 스포츠 지원의 불균형적인 시스템
오랜 지연과 학연으로 인한 파벌 전쟁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오랜 판정 시비 등은
균형적인 비판의 모습으로 우리가 판단의 삿대질을 추세울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격모독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으로
그 종목에 많은 것을 아는 양 그 종목의 선수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양
비판을 넘어서 창의적인 모독들,
재기를 힘들게 하는 정신적 상처를 남기는 악의적 공세들을
우리는 흥미나 재미라는 이름으로 즐기고 있지 않나
오히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비판해 보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우리 선수들 전부의 이름을 주목받지 않은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세상은 승자만을 기억한다는 것이 법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우리 사회가 패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다음번 도전에 대한 기대의 응원을 베푸는
우리 또한 그들처럼 실패와 패배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따뜻한 이해의 손을 내밀어 주는 
그런..모습이 되길 소망해 본다. 

by 칼라꾼 | 2008/08/24 02:42 | 수다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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